처음 가본 길을 걸었다
아직 열지 않은 상점가
다양한 국적의 사람들
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
낯선 언어가 스쳐 지나가
못 알아들어도 웃음은 같아
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
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가
또 다시 길을 걸었다
다양한 상점가와 식당들
행복해 보이는 사람들
그 사이에 앞으로만 걷는 아이
뭐가 그리 급해서 혼자
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처럼
그냥 앞만 보고 걷는 아이
뭐가 그리 불안해서 그래
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채
빨간 불만 가만히 바라보다
문득 내 그림자조차도
어디론가 떠날 것만 같아
이 도시의 밤은 밝은데
사람들 표정은 조용하네
누군가는 전화를 붙들고
누군가는 한숨을 삼키네
그리고 지하철을 탔다
어느 나라나 작은 화면에
귀에는 작은 플라스틱 두개
아무도 남을 신경쓰지 않아
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
편의점이든 지하철이든
각자 열심히 사는 사람들
작은 행복을 사는 사람들
창문 밖으로 스쳐가는
처음 보는 낡은 간판들
누군가의 오래된 하루가
저 불빛 안에 남아 있겠지
자리 끝에 앉은 노인은
작은 봉투를 꼭 쥔 채로
졸린 눈을 애써 뜨고서
집으로 돌아가는 표정
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
멀리 떠나오긴 했는데
아직 마음 한구석에는
떠나오지 못한 내가 있어
괜찮아 보이는 거리에도
숨겨둔 외로움은 있겠지
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
저마다의 밤이 있겠지
다시 또 길을 걸었다
조금 느린 발걸음으로
급하게 앞만 보던 마음도
천천히 주변을 바라보네
처음 가본 길의 끝에서
익숙하지 않은 공기 속에
왠지 모르게 살아 있다는
기분 하나만은 선명했어